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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인천은 7대 어향이라 불렸습니다. 고려시대 인천은 7대 어향이라 불렸습니다. 어향이란 왕의 고행을 뜻하니 7대에 걸친 임금의 고향이란 뜻입니다. 물론 개경 왕국에서 태어나게 마련인 고려왕의 고향이 인천일리는 없지요. 대신 왕의 외갓집인 외향과 왕비의 친정인 내향은 인천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려의 제11대 국왕인 문종부터 제17대 인종까지 7대 동안 인주인씨가 왕실의 외척이 되었기 때문이죠. 덕분에 7대 어향이란 별칭이 생긴 겁니다. 인주 이 씨의 여인들은 문종, 순종, 선종, 예종, 인종 등의 왕비가 되었고 순종, 헌종, 숙종, 인종 등 5명의 왕을 낳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인주 이 씨는 고려 최고의 명문가로 자리 잡았고 이들의 본관인 인천은 승격을 거듭했답니다. 외척에서 반역자로 인주 이 씨의 흥망성쇠 인주 이 시가 왕실의 외척으로.. 2023. 7. 25.
견당사를 파견하던 통일신라는 8세기 중반 경덕왕을 고비로 내리막길 견당사를 파견하던 통일 신라는 8세기 중반 경덕왕을 고비로 내리막길에 접어듭니다. 중앙 귀족들의 권력 쟁탈전이 서로 를 죽고 죽이는 전쟁으로 치달았던 탓이었습니다. 신라 말기 왕들의 평균 재위기간은 10년이 안될 정도로 빨리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암살과 반란이 잦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의 정치가 혼란해지니 지방의 유력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갖추고 자기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호족의 등장이었습니다. 통일신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해상호족과 왕건 고려를 세우다 신라말의 호족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구분됩니다. 첫째 부류는 중앙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지방으로 내려가서 자기 세력을 키운 귀족들입니다. 이들은 지방을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켜 왕권에 도전했습니다. 유력한 중.. 2023. 7. 24.
백제와 고구려에 이어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 백제와 고구려에 이어 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이 지역의 통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입니다. 진흥왕은 북한산까지 순행 즉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 하여 순수비를 세우고 북한산주와 중원소경을 설치하여 왕족과 부자들을 옮겨 살게 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새로 확보한 한강 유역을 삼국 통일의 전진기지로 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구려의 매소홀에서 신라의 소성현으로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한강유역은 예로부터 정치와 경제, 문화의 심장부였습니다. 앞서 삼국사기의 온조백제 건국 이야기에 나왔듯이 이 지역은 북쪽과 동쪽이 산악으로 둘러졌고 서쪽이 바다에 면하여 남쪽에 평야까지 어우러진 천혜의 분지였습니다. 특히 한강 하류의 비옥한 평야와 풍부한 인적자원은 이 지역 정치발전.. 2023. 7. 23.
백제가 중국과 교류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근초 고왕때의 일 백제가 중국과 교류하기 시작한것은 4세기 근초고왕때의 일입니다. 백제의 13대 근초고왕은 활발한 정복사업으로 삼국 중 제일먼저 백제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영산강 지역의 마한 잔여세력을 복속시키고 낙동강 서쪽의 가야 세력도 영향권 안에 넣었죠. 고구려 와도 전쟁을 벌여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 원왕을 전사시키고 대방의 옛땅가지 차지하는 개가를 올렸습니다. 덕분에 백제는 개국 이래 최대의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백제가 중국 동진과 손을 잡다 평양성 전투 이듬해인 근초고왕27년에 백제는 중국의 동진에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서 조공 하엿습니다.조공이란 전근대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사정을 파견하여 예물을 바치는 일이 엇습니다.그렇다고 중국의 속국임을 인정하고 지배를 받는건 아니 였습니다.중국의 나라들도 자신.. 2023.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