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인천은 7대 어향이라 불렸습니다. 어향이란 왕의 고행을 뜻하니 7대에 걸친 임금의 고향이란 뜻입니다. 물론 개경 왕국에서 태어나게 마련인 고려왕의 고향이 인천일리는 없지요. 대신 왕의 외갓집인 외향과 왕비의 친정인 내향은 인천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려의 제11대 국왕인 문종부터 제17대 인종까지 7대 동안 인주인씨가 왕실의 외척이 되었기 때문이죠. 덕분에 7대 어향이란 별칭이 생긴 겁니다. 인주 이 씨의 여인들은 문종, 순종, 선종, 예종, 인종 등의 왕비가 되었고 순종, 헌종, 숙종, 인종 등 5명의 왕을 낳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인주 이 씨는 고려 최고의 명문가로 자리 잡았고 이들의 본관인 인천은 승격을 거듭했답니다.
외척에서 반역자로 인주 이 씨의 흥망성쇠
인주 이 시가 왕실의 외척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허겸의 손자인 이자연 때의 일입니다. 그는 세 딸을 모두 문종의 왕비로 들이면서 왕의 장인이 되었습니다. 장녀인 인예태후는 10명의 왕자와 공주를 낳았는데 이 중 세 왕자가 순종, 선종, 숙종으로 연달아 왕위에 오르면서 인주 이 씨는 최고의 외척 가문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고려 전기를 대표하는 승려인 대각국사 의천 또한 인예태후의 왕자 중 한 명입니다. 덕분에 이자연은 최고벼슬인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들도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인주 이 씨는 문종에서 인종까지 7대에 걸쳐 외척의 지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해주 최 씨, 경주 김 씨, 파평 윤 씨, 강릉 김 씨 등 다른 유력 가문들과도 혼인 관계를 맺어 자타 공인 고려 최고의 권력 가문이 되었습니다.
이자겸의 난
태자였던 예종이 즉위하자 태자비는 순덕왕후가 되고 인주가 씨 가문은 외척의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순덕왕후가 낳은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인주 이 씨는 예정의 권력을 완전히 되찾게 됩니다. 그러나 권력이 다시 정점에 이른 순간 파국이 찾아옵니다. 이자연의 또 다른 손자 이자의 의 사촌인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사실 이자겸은 이미 자신의 두 딸을 인종의 왕비로 들여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왕보다 더 큰 권력을 쥐고 나라일을 마음대로 주물렀습니다. 왕의 허락도 없이 제 마음대로 중국 송나라에 사신을 보낼 정도였습니다. 뇌물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남의 물건과 땅까지 빼앗아 백성들의 원성도 자자 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던 인종은 이자겸을 제거할 계획을 꾸몄는데 이를 눈치챈 이자겸이 선수를 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반란이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이자겸은 자신의 오른 팔인 무신 척준경과 함께 인종을 자기 집으로 강제로 옮기고 인종을 여러 차례 독살하려고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인종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척준경을 설득해서 이자겸을 제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왕비였던 이자겸의 두 딸 또한 폐위되어 인주 이 씨는 외척의 지위와 함께 권력을 잃게 되었답니다.
경원군에서 인주로
고려초기에는 통일 신라 때의 지명인 소성현으로 계속 물리다 숙종 때 경원군으로 바뀌었죠. 경원이란 경사의 근원이란 뜻입니다. 개명과 동시에 현에서 한 단계 높은 군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숙종의 어머니였던 인주 이 씨 인예태후의 고향이기 때문이었습니다.